23.3.12 주일예배 설교입니다.
로마서 5:5-8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기준은 성경에 2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율법이다. 율법은 하나님에 대해 죄를 지은 자에게 끝까지 보응하시는 분이라고 말한다. 율법에 의하면 하나님은 두려운 분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면 그는 죄인 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의 존재이시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버리기 위해 율법의 안경을 벗어버리는 것이 시작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세상의 저주를 담당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인간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이야기는 호세아와 고멜의 이야기에 잘 드러나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그를 사고.”(호3:1-2) 그리고 탕자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눅15:20-21) 탕자가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말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율법의 안경을 끼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의롭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는 우리의 죄인인 것과 완전하지 않음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을 주셨고, 그의 의로움을 옷입게 하셨다.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요21:45)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면 사랑의 존재이신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시다. 사랑의 존재이신 그를 바라볼 때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