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9:1-5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공감이란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마음 상태를 함께 느끼는 것이다. 하나님은 공감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만물 위에 계시나 만물 안에도 계셔서 만물을 느끼시고, 공감하신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기 성도들에게 어떻게 공감하시는지를 보여준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바울은 예수님을 직접 핍박한 적이 없으나 예수님은 성도들의 고난을 자기 일처럼 느끼신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25:40) 사람도 공감 능력이 있으나 하나님만큼 공감할 수는 없다.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눅7:13) 주께서는 독자를 잃은 과부를 보시고, 너무 마음 아파하시며(스플랑크니조마이σπλαγχνίζομαι) 그 아들을 살려주셨다.
소통은 공감이 있어야 의미가 있다.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들의 마음을 헤아려보자. 가족들이 곁에 있을 때 공감해주지 못한 것은 오랜 세월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주님의 마음으로 공감하자. 그래서 가정 안에 아름다움과 화목함이 이루어지게 하자.